아사히 신문이 겨우 인정한 위안부 루머(朝日新聞がやっと認めた慰安婦デマ)

アゴラ編集部

아사히 신문의 「위안부의 강제 연행
보도는 무근거한 사실이다. 나는 그것을 10년 가까이 주장 해왔는데 아사히는 이제야 겨우 오늘 지면 에서 인정하었다.

유료 기사의 일부를 인용하겠다.

그 남자의 이름은 요시다 세이지씨. 저서에서는 일용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조직인 야마구치현 노무보국회 시모노세키 지부에서 동원 부장을 하고 있었다고 하었다.

아사히 신문은 요시다씨에 대해 확인 가능한것만으로도 16회 보도 하었다. 첫 게재는 82년 9월 2일부 오사카본사판 조간 사회면. 오사카시내에서 가진 강연 「제주도에서 200명의 젊은 조선인 여성을 『끌어 모았다』
를 보도하었다. 집필자인 오사카 사회부 기자(66)는 「강연 내용이 구체적이고 상세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고 한다.


97년 3월 31일 특집 기사 취재 때 요시다씨는 도쿄 사회부 기자(57)와의 면회를 거부. 허위가 아닌가 의심하는 보도가 있음을 전화로 전하었을때 「체험한대로 썼다
고 대답했다. 제주도에서도 취재를 하고 사실여부를 확인 할 수는 없었지만 요시다씨의 증언이 허위라는 확증도 없었기 때문에 「진위는 확인할 수 없다
고 표기했다. 그 후 아사히 신문은 요시다씨 관련 기사를 다루지 않았다.

금년 4~5월 제주도에서 70대 후반~90대의 합계 약 40명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강제 연행했다고 하는 요시다씨의 글을 뒤받침 하는 증언은 들을 수 없었다.

요시다씨는 저서에서 43년 5월에 서부군의 동원 명령으로 제주도에 갔었고 그 명령서 내용이 부인(고인)의 일기에 남아 있다고 하었다. 그러나 이번에 요시다씨의 장남(64)에게 취재한 결과 부인은 일기를 쓰지 않았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요시다씨는 00년 7월에 사망했다고 한다.

■ 독자 여러분에게
요시다씨가 제주도에서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고 하는 증언은 허위라고 판단됨으로 기사를 취소합니다. 당시 허위 증언을 간파하지 못하었습니다. 제주도를 재취재했습니다만 증언의 근거가 될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연구자에 대한 취재과정에서도 증언의 핵심 부분에 대한 모순이 많이 밝혀졌습니다.

요시다 세이지의 이야기는 나도 1991년에 한국에서 취재하었을 때 알고 있었다. 「강제 연행
은 일본군이 숨겨 온 비밀이라고 생각되고 있었기때문에 그 뒤를 캐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증언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는 중에 아사히 신문은 요시다 증언을 몇번이나 지면에 올렸다. 그의 이야기에는 명확한 모순이 있었는데 그 증언을 확인하는 기본과정을 거치지 않은것이다.

1면에서 이러저러한 변명을 하고 있지만 이 유언비어의 출발점은 아사히 신문이며 1991년부터 92년에 걸친 위안부 보도는 「강제 연행
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증거를 모아 보도 된것이다. 그로부터 밠혀진것은 군이 위안소를 관리하고 있었지만 강제 연행한 사실은 없다는 것이다. 오늘 기사에서는 그 오보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연재라고 하니 앞으로 보도 될것이다.

1982년에 첫 오보를 내고 나서 실로 32년만의 정정 기사다. 그 결단은 훌륭하지만 너무 때늦었다. 보기 흉한 변명은 그만하고 어떻게 되어 그러한 잘못이 일어났고 정정하지 않는 채 30년 이라는 시간을 지냈는지를 검증하고 이 오보가 일한 관계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반성해 주었으면 한다.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NY 타임즈를 위한 「위안부문제
가이드
에서 언급하었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アゴラ編集部:以上は、アゴラ 2014年8月5日掲載の池田信夫氏によるエントリー「朝日新聞がやっと認めた慰安婦デマ」をハングル翻訳ボランティアのご協力により再掲したものです。また、本文のリンク先は日本語です(링크처는 일본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