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문제자체는 역사학에서도 이미 매듭이 지어진 문제(비문제)이지만 어째서 아사히 신문이 20년이상 세계를 혼란스럽게 하었는지를 밝히는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운명의 갈림길이 된것은 1997년 3월 특집 기사였다. 기사에서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위안부문제가 게재되게 된 것을 자사의 승리라고 평하고 「아직 불충분하다」는 논진을 폈으나 문제의 요점인 강제 연행은 얼버무렸다. 기사는 요시다 세이지씨의 증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명하었다.
제주도 사람들에게서도 요시다씨의 저술의 근거가 될만한 증언은 듣지 못했고 진위는 확인할 수 없다. 요시다씨는 「자신이 체험한대로 썼다」고 하지만 「반론할 생각은 없다」며 관계자의 이름 등 정보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
요시다는 1993년에 하다 이쿠히코씨의 조사에 「픽션이다」고 인정하었고 96년에는 주간 신조 취재에서 「책에 진실을 써도 얻을것은 없어. 사실을 숨기고 자기 주장으로 기사를 채우는일은 당신들 신문사도 하거 있잖소」고 대답하고 있다. 이번 정정 기사는 97년에 보도해야 했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관계를 모호하게 한 채 아사히는 「강제성이 문제시 되는것은 얼마나 전위안부의 「인신의 자유」가 침해되고 그 존엄이 유린 되었는가 라는 관점에서 부터이다 」라고 주장한다. 여성의 존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문제는 그러한 일반론이 아니다. 이것은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 사이의 전시 배상 유무에 관한 문제다.
예를 들어 종군 간호사는 당연히 군속이나 유족연금은 있어도 생존자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없다. 민간 여자정신대등 전시 동원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아무런 보상이 없다. 이에 따라 만일 위안부가 여자정신대였다고 해도 보상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평소부터 논의가 있었다. 전사자의 유족에게는 유족연금이 있는데 민간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피폭자는 예의로 하면서 어째서 도쿄 대공습 사망자에게는 아무것도 없는가 –이렇게 주장하며 도쿄 대공습 피해자와 그 유족들 130명남짓이 정부에 사죄 배상을 제소하었지만 작년에 최고재판소에서 패소가 확정되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전쟁으로 죽은 80만명의 민간인 모두에게 배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전후 70년분의 유족연금을 지불한다면 배상 총액이 100조엔을 넘는다. 대공습 희생자에게 이런 대우인데 어떻게 살아 있는 위안부에게 배상이 있겠는가.
후쿠시마 미즈호씨가 이러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인권」을 거론하며 정부에 무한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라 정사에 이러쿵 저러쿵 시비를 거는것이 그녀의 일이니까. 그녀와 맞장구를 치며 정부에 천문학적인 배상을 요구하는 아사히 신문은 터무니없는 바보나 나라를 등쳐먹는 프리라이더 (무임승차자)이다.
アゴラ編集部:以上は、アゴラ 2014年8月18日掲載の池田信夫のエントリー「朝日新聞というフリーライダー」をハングル翻訳ボランティアのご協力により再掲したものです。また、本文のリンク先は日本語です(링크처는 일본어입니다)。